










흙으로 써 내려간 노년의 서사시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빚어내느냐는 오직 작가의 몫입니다. 91세의 노경분 작가님은 인지장애 3등급이라는 신체적, 정신적 제약을 넘어 흙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매체를 통해 세상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개인전 <남은 생은 도예가>는 치매라는 터널 속에서도 잃지 않은 작가의 예술적 자아와, 그 손끝에서 탄생한 생명력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전시 정보 (Exhibition Details)
- 전시명: 노경분 개인전 — 남은 생은 도예가
- 기간: 2026. 5. 6(수) - 5. 12(화)
- 장소: 공간하나 갤러리 (서울 종로구 대학로 5길 15)
- 문의: 0507-1395-7520
- 유튜브 채널: @노경분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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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선: 결핍을 채우는 순수의 손길
노경분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기교보다 '본질적인 순수'가 느껴집니다. 인지적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다름 아닌 흙에 대한 집중과 몰입이었습니다.
- 조형적 특징: 작가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은 비정형의 미학은 완벽을 추구하는 현대 도예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닮았네", "꽃잎" 등의 작품에서 보이듯, 작가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관람객에게 가공되지 않은 감동을 전달합니다.
- 심리적 치유와 예술: 치매 어르신 미술전시회(2023~2025)를 거쳐 첫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도예는 작가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기억의 파편을 하나로 모으는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전문적 식견: 도자 재료와 소성으로 본 작품의 깊이
도예 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노경분 작가님의 작업은 핸드빌딩(Hand-building) 기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태토와 화장토의 조화: 백자토 기반의 기물 위에 청색 안료를 활용한 패턴 작업은 절제되면서도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내포합니다.
- 화염의 기록: 가마 안에서 1,250°C 이상의 고온을 견디며 완성된 기물들은 작가가 보낸 인고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특히 '너 이쁘다'와 같은 대형 기물은 91세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게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완성되었습니다.
주요 전시 이력 (Exhibition History)
- 2023: 치매어르신 미술전시회 (서울특별시의회 중앙홀)
- 2024: 치매어르신 미술전시회 (대한민국 예술인센터)
- 2025: 치매어르신 국제미술교류전 (대한민국 예술인센터)
- 2026: 노경분 개인전 (공간하나 갤러리)
마치며: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91세의 나이에 '남은 생은 도예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이 전시는 단순히 한 노인 작가의 작품을 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어떤 상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창조적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장입니다. 가정의 달 5월, 노경분 작가님이 빚어낸 흙의 온기를 통해 가족의 사랑과 삶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전문 용어 해설]
- 인지장애(Cognitive Impairment): 기억력, 언어 능력, 판단력 등 인지 기능이 저하된 상태.
- 핸드빌딩(Hand-building):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흙을 쌓아 올리거나 빚어서 형태를 만드는 도예의 기본 기법.
- 소성(Firing): 가마에서 고온으로 구워 도자기의 강도를 높이고 유약의 화학반응을 이끌어내는 과정.
에필로그: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사랑의 기록'
이 전시는 한 노년 도예가의 데뷔전이기도 하지만,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지장애라는 파도를 함께 넘으며 어머니의 곁을 지킨 딸의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기록'이기도 합니다.
도예가 임하나 님이 어머니 노경분 작가님을 위해 바치는 헌시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전시장을 찾으신다면, 어머니의 거친 기물들이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놓지 않으려는 숭고한 의지'였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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